퀴어퍼레이드는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스톤월 항쟁
1969년,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의 게이바 ‘스톤월 인’은 성소수자들에게 오아시스와 같은 곳이었어요. 당시 뉴욕에선 동성애가 불법이었기 때문에, 성소수자들이 갈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었거든요. 물론 스톤월 마저도 평화로운 곳은 아니었는데, 경찰이 단속을 핑계로 찾아와 사람들을 조롱하고 괴롭히는 일이 많았죠. 6월 28일 새벽, 참다 못한 성소수자들이 경찰에 저항하기 시작했고, 이는 몇 날에 걸친 시위로 번졌어요.
그로부터 1년 후 같은 날, 스톤월 항쟁을 기념하는 “게이 프라이드 퍼레이드”가 뉴욕에서 열렸고, 이것이 오늘날 전세계로 확산된 프라이드 퍼레이드의 시초입니다. 이후 유럽, 남미 등으로 확산된 퍼레이드 물결은 1994년 아시아 지역으로 넘어오게 되죠.
그럼 아시아 최초는?
1994년 필리핀에서 가장 먼저 시작되었어요. 같은 해에 일본, 그리고 2000년에 한국에서도 처음 열렸고요. 이후 2003년 대만, 2008년 홍콩, 2009년 중국, 2010년 네팔, 2012년 베트남에서도 퍼레이드가 시작되었고, 그 규모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요.
한국에서는
서울 대학로에서 단 50명이 참여했던 첫번째 퀴어퍼레이드는 2019년에 이르러 무려 15만 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축제로 발전했어요. 퍼레이드가 열리는 장소는 이태원, 종로, 홍대, 신촌을 거쳐 2015년부터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리고 있고요. 이제는 서울 뿐만 아니라, 대구, 광주, 인천, 제주 등 지역으로도 확산되었죠.
퀴어퍼레이드가 특별한 이유는?
퍼레이드 하면 놀이공원의 퍼레이드부터 떠오르는 분도 계시죠? 반짝이는 장식물이 가득한 트럭, 멋지게 화장한 사람들, 그리고 신나는 음악과 춤을 곁들인다는 점에서 퀴어퍼레이는 여느 퍼레이드와 비슷한 면도 있어요. 그럼 다른 건 뭘까요?
프라이드, 프라이드, 프라이드
한국어로 '자긍심'으로 번역되는 프라이드. 왜 퀴어라는 이유만으로 프라이드가 있어야 하냐고 묻는 분도 있는데, 여기서 ‘프라이드’는 내가 제일 잘났다는 뜻보다는 차별과 혐오에 저항하는 정신이라고 할 수 있어요. 퀴어를 향해 숨죽이고 있을 것, 드러내지 말 것, 수치스러워 할 것을 요구하는 사회에 맞서며, 자기 자신과 커뮤니티를 사랑하고 존중하자!는 의미죠. (물론 ‘내가 제일 멋쟁이라서 프라이드’ 인 퀴어들도...리스펙트합니다.)
다양한 색깔의 깃발들
퀴어퍼레이드의 역사가 쌓이는 동안, 더욱 다채로운 색깔을 지닌 사람들이 퍼레이드에 참여하며, 이를 드러내는 색색의 깃발도 등장하고 있어요.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6색 무지개 뿐만 아니라 트랜스젠더, 인터섹스, 논바이너리 등을 상징하는 깃발이 휘날리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어요.
여성, 장애인, HIV/AID감염인, 난민 등과 연대의 메시지
스톤월 항쟁의 맨 앞에 나섰던 사람들은 유색인 트랜스젠더, 가난한 10대들, 갈 곳 없는 사람들이었다고 전해져요. 이 역사를 이어 받은 퀴어퍼레이드는 결국 차별에 더 민감하고 다른 소수자들의 아픔에 공감할 줄 아는 사람들이 모여서 연대를 도모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나도, 퍼레이드에 참여해도 될까?
성소수자이든,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사람이든 퀴어퍼레이드는 누구에게나 열려있어요. 행진 대열에 참여한 사람들의 함성을 느끼다 보면, 움츠러들었던 어깨가 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죠.
각 나라마다 퀴어퍼레이드의 풍경이 제각각이라서 해외 관광객들이 정말 많이 다녀가는 행사이기도 한데요, 한국의 퀴어퍼레이드는 재밌고 다양한 부스 프로그램으로 정평이 나있어요. 성소수자 인권을 옹호하는 단체/모임이 운영하는 부스에는 캠페인과 이벤트, 소장가치 100%인 굿즈들까지 즐비해요.
내일 열리는 서울퀴어퍼레이드의 중심지, 서울시청광장으로 와보세요. 서울시는 매년 퀴어퍼레이드가 열릴때마다 성소수자 혐오적인 이유를 대면서 행사 개최를 방해하고 있어요. 하지만, 바로 그런 혐오에 계속해서 저항하는 것이 바로 퀴어퍼레이드의 정신 아니겠어요? 내일, 우리의 광장에 흘러넘칠 프라이드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어요!